제 3638 호
2025년 08월 03일
금주의 말씀
제목 : ‘예배, 공연이 아니라 경배입니다!’
본문 : 레위기 10:1~5 (구약 140쪽)
들어가는 말 :
 
무더위 가운데 한 주간 잘 지내셨는지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내 방식대로, 내 생각대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바르게 드린 예배는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 충전되는 복된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꼭 인식해야 할 사실은 예배는 형식적이고 반복되는 습관과 같은 것이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가 아닌 내 방식대로 예배드렸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본론 :
 
성경에 최초로 등장하는 제사 또는 경배는 창 4장에 기록된 가인과 아벨의 제사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에 두 아들을 낳았는데 이 두 아들이 농사를 짓고 양을 키우던 가인과 아벨이 첫해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가인과 아벨 두 형제가 모두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제사의 결과는 상반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관심(KJV - respect)을 보이셨습니다. 하지만 가인의 것에는 관심을 갖지 않으셨습니다. 원인이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 하지만 히 11:4를 참조하면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욱 뛰어난 희생물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의롭다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께서 그의 예물들에 대하여 증언하시느니라. 그가 죽었으나 믿음으로 여전히 말하고 있느니라”.
성경은 죄인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된다고 신구약 모두가 일관되게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벨이 드린 제사는 믿음으로 드린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곧 그의 마음과 태도가 영으로 드린 제사였으며 동시에 피 흘림의 제사는 죄 사함을 얻는 구속의 절대적인 원리이기 때문에 진리로 하나님을 경배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드린 제물이 무엇인가도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제물을 드리는 마음과 태도도 중요합니다.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레 8~9장에서 제사장 위임식을 마치고 정식으로 제사장 임무를 성막에서 수행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하나님의 성막에 들어가 향로에 불을 붙일 때 하나님께서 명하신 번제단의 불을 가져다가 붙여야 하는데 자신들이 임의로 어디선가 가져온 ‘이상한 불’을 가지고 향불을 피웠습니다. 그런데 이 한 번의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나답과 아비후의 자기 방식에 따라 분향한 행위는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킨 원인이 되었고 두 사람은 주로부터 나온 불이 그들을 삼키매 그 자리에서 즉시 죽게 되었습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드린 이상한 불을 드린 제사는 근본적으로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이상한 불’은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한 예배로 볼 수 있습니다. ‘이상한 불’은 신약적 개념과 원칙으로 적용한다면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제사에 있어서 자기 판단과 방식과 편리성으로 하나님을 자의적으로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분향의 원리를 무시한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주님의 거룩함을 모독한 행위였습니다. 그렇다면 나답과 아비후의 죄와 유사한 문제가 오늘날의 기독교나 교회 안에 있다면 그것이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1.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부인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이렇게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그것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딤후 3:5).
오늘 교회 안에 찬양과 기도가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시간에 증거 되고 있지만 그 예배 가운데는 하나님의 진정한 임재와 거룩함에 대한 경외와 사모함이 부인되거나 무시될 수도 있습니다. 감동적인 예배를 드렸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두려움과 하나님 앞에 회개와 순종이 없는 모습이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배는 영과 진리의 균형을 잃어버린 인본적인 예배가 드려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2. 하나님이 아닌 우리 자신 중심적인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께 집중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하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만족하고 사람의 이목을 집중하는 음악과 조명에 강조를 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미국과 한국의 적지 않은 교회 예배당 시설과 분위기가 그런 모습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가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선포하기보다는 흡사 엔터네이너가 공연을 하듯이 오락과 웃음, 흥미위주의 예배로 이끌고 있다면 나답과 아비후가 자기 방식대로 드린 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려야 하는데 그 이유는 감성자극형 예배, 또는 공연형이나 쇼와 같은 예배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3. 창조적인 예배를 시도했지만 예배의 기본 원리에서 벗어난 것이 문제입니다.
‘창조적 예배’란 말은 21세기 사람들에게 맞춤형의 예배처럼 신선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성경적 예배가 아니라 나답과 아비후의 자기 생각과 방식의 예배와 같은 종류의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자체는 하나님이 정하신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예배는 이미 정해진 자연스럽고 마땅한 기본 질서적인 원리입니다. 이 원리를 바꾸어 새롭게 창조적인 적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과 진리로 드려져야 하는 예배의 설교는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고자 흥미 위주로 설교한다면 하나님이 관심두지 않는 가인이 드린 제사와 같고 나답과 아비후가 주님을 경외하지 않은 제사와 같은 예배가 될 것입니다.
신학자 데이빗 웰스는 그의 책, <Losing our virtue>, <윤리실종>이란 책에서 오늘날의 교회들이 어떻게 도덕적 방향 감각을 잃었는지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① 진리에 대한 절대 기준의 상실.
② 하나님에 대한 경외의 실종
③ 감정 중심의 신앙
 
출 34장을 보면 성막 또는 성전의 분향에서 사용할 향의 재료는 임의로 만들지 말라고 엄중히 말씀하셨습니다. 레 16:12에서 ‘주 앞의 제단에서 불타는 숯이 가득한 향로를 취하며’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즉, 향로에 불을 붙일 때 사용되는 불은 다른 곳에서 임의로 가져온 불이 아니라 반드시 번제단에서 가져와야 함을 명시하신 것입니다. 왜 그렇게 지시하신 것입니까? 번제단의 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의 용서와 하나님과의 화목을 위해 가져온 희생제물을 태우는 장소로써 사람들의 죄를 불로 태워 없애는 상징과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향로불로 번제단의 불을 사용할 때 주님께 드리는 우리의 기도가 용납되고 응답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매일 아침마다 향로에 불을 피워 주께 향을 올려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날마다 우리가 올려 드리는 기도 특히 중보기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사장의 직무를 받은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의 명령을 간과한 것입니다.
 
결론:
 
우리의 예배는 무대가 아니라 제단 앞에서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공연은 사람을 위한 것이고 관객도 연기자도 사람이 주인공입니다. 그러나 예배는 하나님 한 분을 위한 것이며 하나님이 주체이십니다. 우리의 예배는 공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죄성과 옛 성품을 지닌 우리는 감히 하나님 앞에 내 생각과 내 방식대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오늘도 참된 예배자를 찾고 계십니다. 주님을 예배하는 일은 영원토록 지속될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접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는 개인과 가정에서 드리든, 또는 온 교회 성도들이 함께 모여 공적인 예배를 드리든 우리의 의도가 아닌 영과 진리에 합한 예배로 드려져야 합니다. 성경적인 올바른 예배는 바른 믿음과 신앙으로 이어질 것이며 하나님께서 동시에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럴 때에 주님은 우리를 기뻐 받으시고 복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내가 드리는 예배’, 그리고 ‘우리 교회가 드리는 예배’는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가 있으며 주님의 기쁨이 되는 예배를 드리기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기도제목
◎ 교회와 사역을 위하여
- 구령목표 300명, 성인 출석목표 300명이 달성되도록
- 교회에 활발한 복음 전파와 구령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 담임목사님의 영육간의 강건함과 성령 충만함으로 사역 감당하도록
- 사역자, 집사님, 직원들이 맡겨진 사역과 섬김을 잘 감당하도록
- 주일학교, 찬양대, 바나바팀 등 각 부서 사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도록
- 707 비전이 하나님 뜻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 선교사님들과 선교 사역지를 위하여
- 본교회 파송 선교사 : 김연규(미얀마)
- 본교회 협동 선교사 : 박정선(대만), 여병무/김종옥(몽골), 임철순(가나), 김성준(멕시코), 한수현(네팔),   김성일(N국), 한대기(미얀마), 이지성(인도네시아)
- 한국성서침례신학교와 본교회 신학생 : 이희천, 박준, 권도희

◎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 성경 원리에 반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지 않도록
- 나라의 위정자들이 정직하고 공정하게 나라를 이끌어 가도록

◎ 구원을 위하여
- 강양원, 강일심, 고구호, 구미옥, 김강중, 김건중, 김문희, 김수열, 김수정, 김승철, 김예은, 김용성, 김용승, 김용옥, 김용훈,        김일순, 김재화, 김정남, 김정원, 김채연, 김현수, 김형복, 노형석, 문명온, 박미솔, 박선옥, 박세종, 박영숙, 박옥신, 박종옥,
  박혁균, 박희원, 배옥순, 설영덕, 손영필, 손유진, 손희남, 손희준, 송윤근, 송   철, 송해권, 양선규, 여례연, 우옥자, 유수진,
  유양선, 유정희, 유흥종, 이가은, 이금남, 이용진, 이현숙, 이홍식, 임보경, 임상근, 임향림, 임향선, 임향옥, 전원례, 조순심,
  조영란, 지윤선, 차   훈, 최종균, 최종석, 한형진, 황한나

◎ 성도들과 각 가정을 위하여
- 최근에 구원받은 분들의 믿음이 잘 성장하도록
- 성도들의 생업과 사업이 번창하도록

◎ 건강 회복을 위하여
- 경향표, 곽세인, 권기덕, 권중희, 김명화, 김민경, 김인환, 김종진, 김택구, 김혜민, 민종섭, 박진호, 배준서, 서만철, 서장석,
  송명자, 신자삼, 오녹순, 이금호, 이만형, 이성혜, 이혜자, 이희천, 하봉순, 홍제범 

◎ 임산부를 위하여 - 이지형

◎ 군 복무 중인 형제들을 위하여 - 이은찬, 김원우

◎ 해외 성도들을 위하여
- 김도현 가정, 최주열 가정, 김세민, 김세영, 김시언, 김예준, 김윤이, 김경애, 백진우, 황세연, 황세희

◎ 교회 헌금 계좌 안내 – 국민은행 806201-04-004362 성서침례교회 
 
교회소식
◉ 2025년 영혼 구령 (현재까지 결신자 : 159명)
- 결신자 : 권동진외 6명
 
◉ ‘전성도 여름수양회’가 ‘나는 예배자입니다!’라는 주제로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내년이 더욱 기대가 되는 수양회가 되었습니다.
더 많은 성도님들이 참석해서 복되고 즐거운 수양회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 ‘전도회별 임원모임’
- 오늘 오후 예배 후에는 전도회별 임원 성경공부가 목사님실에서
있습니다.


 

◉ 식당청소   ◉ 안내
8월 9월 10월   8월 9월 10월
백향목회 감람회 청년부   룻회 리브가회 한나회


※ 2025. 8월 ‘빛 가운데 교제’ 질문
1. 언제 어떻게 구원 받았나요?
2. 기도 제목이 무엇인가요?
3. 형제님(자매님) 이 더위를 이기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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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저녁 예배 사무엘상 강해(33) 사무엘의 죽음과 사울의 몰락 사무엘상 28:1~25 이충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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